#102 만만한 고기가 없다
지난번 조행에서의 일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두 분과 함께 먼 강원도길을 나눠가며 번갈아 운전해 갔다.
가는 길은 한 밤중이었지만,
모두 역시 낚시꾼이시라 쪽잠을 아껴가며 졸린 줄도 모르고 가는 길 내내,
고기와 낚시 이야기로 밤을 지샜다.
물론 돌아 오는 길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 고기 이야기, 저 고기 이야기,
각자가 가진 다양한 낚시 경험을 나누다가 문득 생각나는 한 토막,
역시 "낚시에는 만만한 고기가 없다."
제 아무리 잘 낚여오던 어종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서,
혹은 고기 사정에 따라서 도저히 낚을 수 없는 날이 있다.
샛강의 강준치나 살치를 예를 들자니,
이미 그렇지 않음을 내가 잘 알고 있기에 조금 그렇다 마는
한창 시즌의 여름 날이라도, 물이 넘쳐 그럴듯 해보이는 날이라도
종일 빈 바늘로 돌아오는 날이 가끔 있다.
언제든지 내가 나가기만 하면 아무 문제없이 고기들이 얼굴을 덥썩 덥썩 보여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바보 같은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낚시의 철이 들었는지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낚시꾼의 의지대로 낚시를 할 수 있다면 그건 어쩐지 낚시가 아닐 것 같다.
날마다 과학은 발달하고 경험은 축적이 되어,
고기마다 무선발신기를 부착하여 위성추적장치로 위치를 파악해내고,
미래에는 고기를 불러 모으는 무슨 향료나, 호르몬을 통해 고기를 불러 모으고,
고기가 뿜어내는 의사소통 물질을 분석해서 낚시꾼에게 적절한 미끼나 훅 패턴을
알려주는 기계를 휴대하고 다닐 지도 모르겠다.
철저히 유료화된 낚시터에서나 가능하게 될 언제나 즐거운 낚시일지 모르지만,
그건 고기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일이다.
제 아무리 먹고 싶은 미끼가 있더라도 물고 안 물고는 고기의 마음이다.
자율신경이나 반사작용과 같은 단순성으로 고기의 행동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론도 많지만,
혹은 숱한 상관요소들이 엉키고 엉켜서 제아무리 굳건한 필연성을 짜낸다 하더라도
미끼를 물고 안 물고 최후의 결정은 고기가 내릴 것만 같다.
나만 봐도 불현듯 뭔가 하고 싶더라도 갑자기 누군가 멍석을 깔아주면
왠지 모르게 하기 싫어진다....-_-;
이런 것까지 감안하고, 심리적인 접근까지 감안되어
진짜 궁극적인 정답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고기에게 그 마지막 자유의지를 부여해주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래야만 포커판 같은 진짜 게임이 된다는 내맘대로 논리도 있고,
가끔 나로선 알 수 없이 꽝치는 나의 엉터리 실력을 가릴 방패도 되지 않나...^^;
날마다 인간에게 낚이는 것도 서러운데,
낚이지 않을 자유마저 빼앗는다는 건 너무 가혹하다.
혹, 꽝을 치는 날이 돌아오면 녀석들의 자존심을 세워준 날이라고 생각해야 겠다.
물론 고기도 이거 하나는 알아야 겠지?
제 아무리 초보 낚시꾼이라고 해도 알 수 없이 고기를 낚아 내는 날이 있으니,
"역시 만만한 낚시꾼도 없다."